566그 밤에 블루스: 이승열 [요새드림요새] by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 소설가)2017-06-233003


그 밤에 블루스: 이승열 [요새드림요새]

 

꾸준히 인상적인 경력을 이어가는 뮤지션에게는 성장 과정이라고 할 만한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그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사랑한 다른 아티스트의 영향력과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개성이 충돌하는 데뷔작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그 음악이 누구누구와 무엇무엇을 닮았다고 말하면서도 눈을 떼지는 못한다. 두 번째, 세 번째 앨범을 거치는 동안 영향력은 희미해지고, 개성은 확장되며, 대중적인 성공도 누린다.

 

이후로는 길이 갈린다. 자신이 확립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주는 뮤지션이 있고, 아예 판을 뒤엎는 뮤지션이 있다. 록 음악의 예를 들자면 전자는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와 펄 잼(Pearl Jam), 후자는 비틀스(The Beatles)와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있을 것이다. 누가 낫다 못하다 하며 따질 일은 아니다. 전자가 반석 위에 우뚝 서 있다면 후자는 허공에 도움닫기를 할 뿐이다. 어느 쪽이건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뮤지션은 음악사의 거친 파도에서 살아남아 자기 음악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이승열은 네 번째 정규앨범인 [V](2013)에서 허공에 도움닫기를 한 뒤 공중에 사뿐히 안착했다. 큰 성공을 거둔 전작 [Why We Fail](2011)의 이른바 이승열식 팝/이 아티스트 본인은 지겹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음반이었다. ‘노래의 틀을 거부하는 길고 복잡한 구성과 베트남 악기 등을 동원한 이국적인 음률,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싸이키델릭한 사운드, 스튜디오의 음향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라이브의 현장감을 살리려는 시도까지, 호오 여부를 떠나 기꺼이 파격이라 일컬을 자격이 충분했다.

 

다섯 번째 정규앨범인 [SYX](2015) 역시 다른 방향에서 의외라는 인상을 줬다. 전작의 시도를 연장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간결한 곡에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댄스 비트를 활용함으로써 음반의 소리에 금속성 질감을 불어넣었다. 이쯤 되면 그의 다음 작업이 어떻게 이뤄질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 뮤지션이 자기 음악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그 역사는 어떤 형태일까? 무엇을 실험할까? 어떤 파격을 감행하며 흘러갈까? 여섯 번째 정규앨범인 [요새드림요새]는 질문에 느긋하게 답한다. 실험이나 파격이 문제가 아니라고.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다고.

 

이 앨범은 블루스음반이다. 첫 곡 지나간다는 블루지한 기타 코드와 터벅터벅 걷는 듯한 드럼 소리로 시작한다. 이승열은 김수영의 시 현대식 교량을 인용하며 노래한다. ‘희한한 일이지/젊음과 늙음이/엇갈리는 그 순간/사랑을 배운다.’ 다음 곡 “Cup Blues”에서는 네크를 지긋이 짚는 블루스 기타가 흐르는 가운데 깊은 울림을 지닌 이승열의 짙은 목소리가 능숙하게 선율을 풀어놓는다. 아름다운 발라드 “My Own”에서 또렷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무드에 푹 젖어 있는 선 굵은 색소폰 소리와 그 뒤에 아련하게 깔린 빈티지한 오르간이다.

 

하지만 블루스라고? 물론 블루스는 언제나 이승열의 중요한 화두였다. 그렇지만 그가 블루스를 곧이곧대로 해석한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전작 [SYX]에서도 이승열은 “To Build A Fire”“Come Back” 같은 블루스 넘버를 넣었는데, 이 곡들 역시 어떤 의미로건 블루스의 일반적인 관습에 충실하지는 않았다. 신작 역시 지난 음반들을 통해 뮤지션의 음악적 근육에 스며든 방법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지나간다는 중반부에서 모르스 신호 같은 뾰족한 전자음과 홍키통크 피아노가 끼어들면서 달콤쌉싸래한 분위기로 묘하게 탈바꿈한다. 일반적으로 블루스라 일컬을 곡도 따지고 보면 많지 않다. 음반에서 가장 실험적인 트랙일 “Smmfot”은 힙합 비트와 잘근거리는 리듬 기타가 착착 맞아떨어지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중반부에서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긴장된 무드를 조성한다. “Vulture”는 두텁고 강렬한 로큰롤이다. 음반을 닫는 “Dream”은 평온한 앰비언트 넘버다.

 

그런데도 이 앨범이 블루스음반이라 주장한다면, 그건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정서를 가리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느슨하고, 자유로우며, 물이 가득 찬 욕조처럼 슬픔과 외로움이 넘칠 듯 말 듯 찰랑거리는 정서.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세상살이의 불안, 성격장애의 문제, 사상추구의 강박, 코즈믹 패닉의 상태를 우려하다가도 오만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느냐고 마음을 추스르는 정서(“Cup Blues”), ‘잃어버린 도시에 너구리에요같은 알쏭달쏭한 구절이 등장하고(“도시애”), ‘기회는 찬스 천박한 미스 소박한 박스 물려받은 빤스처럼 앞뒤 없는 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히 불러재끼다가도(“Smmfot”) 기형도를 인용하며(“검은잎”), ‘시간의 정체는 의뭉스런 소설가라 통찰하고서는 스스로를 희망 중독자라 칭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I Saw You”) 정서. 이래저래 엉망진창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또 갖고 싶은 술자리 같은 정서.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밤의 음악이고 도시의 음악이다. 자연의 어둠과 인공의 불빛이 공존할 때 가장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상대적인 비교이긴 해도, [요새드림요새]는 이승열의 전작에 비해 편안하게 들린다. [V][SYX]와는 달리 굳이 파헤치고 분석하며 들어야 할 부분이 적다. 사실 이 점이 전작과 신작의 가장 큰 차이다. 이승열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전면에 도드라지고 있으며, 편곡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고, 기타와 드럼, 키보드와 색소폰 등으로 꾸려진 밴드 사운드는 솔직담백하게 녹음되어 있다(지난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이승열은 대부분의 악기를 혼자 연주했으며, 작업은 홈 레코딩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요새드림요새]는 마치 소극장에 앉아 나만을 위한 작은 공연을 듣는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앨범의 이런 특징으로 인해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이승열이 가진 장점이 새삼 부각된다. 생각해보면 그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아티스트이기 전에 좋은 곡을 쓰는 싱어 송 라이터였고, 이 앨범에는 기억에 남는 곡들이 많다. 싱어 송 라이터 이승열을 사랑했던 팬들이라면 이 앨범에서 반가운 순간을 여러 번 마주칠 것이다. 낭만적이고 풍성한 발라드인 “I Saw You”“My Own”도 훌륭하지만 유연하게 흐르는 “Cup Blues”와 큰 진폭의 멜로디가 출렁거리는 도시에”, 힘차게 휘몰아치는 “Vulture” 역시 인상적이며, 음반을 마무리하는 검은 잎“Dream” 또한 긴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이 앨범은 야심을 거두고 만든 여유 있는 소품으로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실험을 중단하고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 의견에 일리가 없지는 않겠지만 내게 묻는다면 경험과 경륜이 쌓인 이상 초심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저 늘 새롭고자 하는 의지를 음악의 형태로 구현하려 애쓸 뿐이다. 여유 있게 들리기 위해서는 죽을힘을 다 하게 마련이며, 그 자체가 아티스트에게는 도전이자 야심일 것이다. 나는 이 앨범이 좋다. 흔들림 없이 자기 세계를 일구어내고 있는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멋진 결과물이다.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지만 속이 빤하지 않다. 연주에는 여유와 생동감이 넘치고, 곡들은 때로 피부에 직접 와 닿는 것처럼 진동하며, 애절한 감상(感傷)에 젖어 있다가도 절실한 호소력과 강력한 음악적 설득력을 발휘한다. 이 앨범을 듣게 될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끼게 될지 궁금하다.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 소설가)